10. 피의 여왕 메리 1세 (1516~ 1558)



피의여왕 메리, 블러드 메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여왕입니다.
바람둥이 헨리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그러나 아버지 헨리8세의 바람끼는 주체할수 없었죠.
헨리8세는 캐서린과 헤어지고 볼린이라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을 내치기위해 이런 말을 합니다

캐서린은 형의 아내이기 때문에 그녀와 결혼하는것은 근친상간이다(응?)

형의 아내가 친척이긴 하지만 피가 섞인게 아닌데
근친상간이라니 바람필려면 머리도 비상해야 하나 봅니다.
여기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바로 캐서린의 딸인 메리였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근친상간의 결과물로 여기었으니까요.
아버지 헨리8세는 이 여자 저 여자와 결혼해서 자식사업만 합니다.
그러다 메리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용서하죠.
카톨릭을 믿던 영국을 성공회로 국교를 바꾼 아버지 헨리8세
그리고 그걸 다시 카톨릭으로 메리가 되돌립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반란이 일어나죠.
프로텐스탄트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교를 성공회로 다시 바꾸라고
했지만 그 반란은 메리에 의해 제압당합니다.
그런데 그 주동자뒤를 조사해보니 아버지 헨리8세가 있었구
메리의 피의숙청이 시작됩니다.
프로텐스탄트 8백명이 메리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죠.

9. 이사벨1세(1451~ 1504)



이사벨 1세는 스페인의 여왕이었구 우리에게는
무적함대 스페인을 만든 여왕이기도 합니다.
그의 자금을 받은 콜롬버스는 미대륙을 발견하기도 했었죠.
무슬림에 지배받던 그라나다 지방도 그녀의 힘에
의해 회복된 스페인 드디어 카톨릭국가로 탄생하게 됩니다.
문제는 카톨릭을 믿지 않은 유태인과 무슬림들을
개종하라고 지시하지만 말이 쉽지 태어나면서 부터
무슬림을 태어나는 아랍사람들에게 카톨릭을 믿으라는것은 그때도 지금도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이사벨 여왕은 가차없이 숙청을 합니다.
이사벨에 의해 죽은 사람이 20만명이라고 하니 자비란 그녀에게 없었나 봅니다.

8. 벨 거너스 (1859~ 1931)



벨거너스는 미 역사상 최고의 악녀중에 한명입니다.
그녀는 키가 183cm로 무척 컷으며
91kg으로 (저 보다 몸이 좋네요)육중한 몸을 자랑합니다.
그녀는 노르웨이 이민자로 미국에 정착하지만 결혼한 남편들이
1년만에 모두 사망하는 불운한 운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입양한 두딸과 아들과 함께 농장에서 살아갑니다.
어느날 그녀의 집에 불이 나고 마을사람들이 불을 껐지만 이미 모두 사망한 상태였죠.
아들과 딸의 시체들 속에 몸이 작은 시체한구가 있었구 그 시체가
모두들 거너스의 시체라고 생각햇습니다.
그런데 거구의 거너스와 다르게 두개골과 뼈가 작은것을
의심한 사람들은 수소문을 해보니 불이 나기전에 거너스가 집에서 빠져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사람들은 집주변을 수색합니다. 그러다 돼지우리에서 14구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대부분 거너스와 하룻밤을 잔 부랑자들이나 농장에 일을 도와주러 왔던 남자들이었죠.


7. 이르마 그레제 ( 1923~ 1945)



나치의 여인입니다.
이 이르마 그레제는 아우슈비치의로 배치된 여간수입니다.
그녀는 너무나 열정적인 직업정신(?)
으로 유태인들을 고문하고 채찍질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또한 수용수 캠프장교와의 염문설등 수용소 내 끝발있는
나치장교들을 자기 밑으로 둘 정도로 색녀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녀의 악랄함에 대한 열정으로 그녀는 아우슈비치 수용수에서
여간수 서열2위까지 오릅니다.
그녀는 유태인들에게 성적학대는 기본, 굶기기 총살, 채찍질등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나치를 그린 영화에서 악녀의 모습 그 이상입니다.
그녀는 수감자 즉 유대인이 죽은시체의 사람가죽을 가지고 문신을 해서
기념품으로 팝니다.
또한 인간피부로 만든 전등갓도 만들죠.
년에는 실내체육관과 수영장을 만들었고 그 실내체육관 설립비는
25만의 유대인 수감자들의 유품들을 팔아서 챙긴돈으로 만듭니다.
여자 나치를 생각하면 굵은 채찍에 앙칼진 눈매를 가진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이 그레제가 그 모습이네요.
2차대전이 끝난후에 그녀는 사형을 당했구 마지막 말이 빨리 죽여줘요 라고 하네요.

6. 측전무후 (624~705)



당(唐) 고종(高宗)의 황후였으나 고종이 죽은 후에
황제에 등극하였다. 황제로 16년간 재위하였지만 실제로는 50여년간 집권을 한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황제이다.
무측천은 황궁에 들어간지 12년이 지나도록 태종을 위해서 단 한 명의 자식도 생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재인의 직위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무측천이었지만 오히려 태종의 아들 이치(李治: 고종)는 일찍이 태자 시절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반해 버렸다.
고종이 황제가 되자 고종은 측천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이고 측천은 첩이된다. 측천은 자신에게 반한 고종을 이용하여 자신의 딸을 죽여가면서까지 황후인 왕씨를 죽게하고 황제의 권력을 하나씩 빼앗아 결국에는 무후의 자리에 앉게되었다. 그러나 고종이 병들고 죽게 되자 신하들은 황태자 '이홍'을 황제의 자리에 올리려 하나 계속 황제노릇을 하고 싶었던 측천은 그 아들을 죽여버린다.
그이후 계속 로봇황제를 내세우면 실질적인 황제의 자리에 올라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황제가 된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적 능력은 매우 뛰어났기에 80세까지 황제노릇을 할수 있었다.


5. 캐서린 나이트 (1956~)



가석방없이 최초로 종신형을 집행 받은 호주여성입니다.
캐서린 나이트는 폭력의 역사에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잔인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전 남편들을 죽이고 그 시체의 일부를 현재 남편과 강아지에게 먹이기 까지 합니다.
캐서린 나이트는 결혼전에 정육점에서 일해서 칼을 잘 다루었는데
그는 흥분할때마다 남편을 칼로 위협합니다.
남편인 프라이스는 두명의 아이들의 아버지였습니다.
틈만나면 계모가 칼들고 아버지를 위협하니
두 아이들이 공포에 떨었을듯 합니다.
결국은 캐서린은 남편인 프라이스를 죽입니다.
그리고 가죽을 벗겨서 현관에 걸어놓고 시체 각 부위를 잘라서
요리를 해서 집에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먼저 그 집에 도착하고 그녀는 체포당합니다.
2001년 호주법원은 너무나 끔찍한 그녀의 사일에
어떠한 가석방도 없이 종신형에 처합니다.

4. 미라 힌들리 (1942~ 2002)



영국에는 Moors murders라는 유명한 살인 사건이 있습니다.
1963년에서 2년동안 남자친구인 이안 브레디와 함께 5번의 살인행각을 벌였는데요
힌들리가 살인대상자를 물색하고 납치하여 무어라는 지역에 있는 남자친구 힌들리에게
주면 성폭행과 함께 살인을하고 그걸 힌들리는 지켜봤다고 합니다.
힌들리의 시동생의 신고로 이 살인행각은 멈추었습니다.
사진만봐도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3. 서태후



청나라 말기의 태후이다. 그녀는 정치적 야심때문에 궁궐의 최고 권력을 가진 여자인 동태후를 죽이고 자기 아들인 동치황제도 죽인다. 그리고 실권을 장악한후에 청나라를 마음대로 사용하였다. 서태후는 극히 부와 타락한 생활을 하였는데 예를 들면 한 식탁은 먹는 것이고 한 테이블은 상상만 하는 것이었다. 서태후의 한끼 식사는 주식이 60가지 점심(짝은 빵)이 30가지 각종 산해진미가 128가지였다. 서태후의 하루 식사비는 백은으로 3kg 들었는데 그 당시 이돈으로 5000kg의 쌀을 살 수 있었으며 만명의 농민이 하루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옷만 해도 3000여 상자가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바꿔입는 사치꾼이었고, 또한 아주 거짓투성이었는데 자기의 존엄을 위하여 줄곧 이화원에 전화 설치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 서태후의 말에 의하면 전화하는 사람이 무릎꿇고 전화하는지 앉아서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궁녀, 내시, 대신들은 서태후를 무척 무서워 했는데 광서황제의 아버지는 광서황제를 황제로 올려놓는다는 말에 기뻐하질 못하고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시들이 사태후의 머리를 빗겨 주었는데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져도 목이 달아난다고 했다. (정상적 사람이 하루에 머리카락 50개 빠지는건 정상)그래서 이련영이라는 내시는 머리를 빗을 때면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빗었는데 서태후의 빠진 머리카락이 모두 소매 안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서태후는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태후는 아주 잔혹했는데 한 내시의 일기에 의하면 한번은 한 늙은 내시가 실수를 범했다 해서 인분을 억지로 먹였다고 한다. 서태후 자신은 매일 저녁 애기 엄마의 젖을 먹는데 매일 저녁 두 애기 엄마는 목욕을 한 후 몸에 붉은 천을 감는데 젖만 내놓고 다 감싸고 서태후가 침대에 눕고 젖먹이는 애기엄마는 무릎을 꿇고 젖을 먹도록 했다. 중국에 여인들이 남자한데 쎈양하는 풍습이 아마도 서태후한데서 전해졌는가 본다.

2. 여태후



한고제 유방의 아내 여태후는 중국역사상 가장 잔인한 여성으로 평가된다. 그녀는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긴후 천하가 안정되었을때부터 잔인함이 부각된 여자다.
그녀에게는 태자 '유영' 이 있었는데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유방이 죽고난후 자기아들에게 위협이될 '한신'과 '팽월'을 삶아 죽인다.
결국 태자가 황제가 되고나서는 고제 유방에게 사랑을 받던첩 '척씨부인'을 죽일생각을 가진다.
먼저 척씨부인을 남자들만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 남자죄수들이 강간을 하게한고 그의 아들 '유여의'를 시체로 만든후 척씨부인에게 그시체를 보여주었다. 이미 척씨부인은 미친상태였고 그런 척씨부인의 눈을 뽑고 귀와 혀를 자르고 팔다리도 잘라버린후 당시 화장실로 사용하던 돼지우리에 던져넣어 돼지처럼 사육했다.
그리고 황제이자 자신의 아들 유영에게 그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충격으로 유영도 미쳐버린다. 유영은 정사를 팽개치고 주색에만 빠졌고 이틈에 여태후는 천하를 여씨들의것으로 만들기 위해 유방의 친족들이자 각나라의 왕인 유씨들을 절반 이상을 죽여서 여씨들을 왕의자리에 앉힌다. 이 과정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결국 여씨가 병들어 죽을때까지 한나라는 공포아래 나라가 엉망이 되었다.

1.엘리자베스 바토리 (1560~ 1614)



위의 9명의 여성보다 이 한명의 여성이 주는 악랄함과 공포심은 대단하네요
많은분들이 악녀하면 바로 이 엘리자베스 바토리를 떠올릴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561년 헝가리 귀족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이 바토리 집안은 재산과 권력이 막강한 귀족집안인데 근친상간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정신병자와 기형아들이 많이 태어납니다.
그중에 한명이 이 엘리자베스 바토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롤 지닌 엘리자베스 바토리 그녀는
15살에 26살의 Ferenc Nadasdy백작과 결혼합니다.
전쟁을 좋아했던 남편은 성에 있기 보다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날이
많았구 혼자 외롭게 지냅니다. 그런데 이 바토리집안의
집안 내력인 근친상간으로 인한 간질이 엘리자베스에게 찾아오고
그녀는 점점 악마의 유혹을 받기 시작합니다.
어둡고 악한 책들을 문화를 가까이 하면서 시어머니의 구박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51세에 죽자마자
그녀는 악녀로 돌변합니다. 구박하던 시어머니는 성밖으로 내?쫓고
악마숭배를 시작하면서 늙어버린 자신의 몸을 추스르기 위해 젊은
여자들의 피를 몸에 바릅니다. 드디어 그녀의 악마성이 몸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여
밤마다 여자하녀들이나 예쁜여자들을
데리고 들어오게 하여 그녀들의 피를 받아서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612명의 여자를 죽인 엘리자베스의 소문은
왕에게 전달되고 왕은 엘리자베스 바토리를 조사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녀의 정체가 만천하에 들통이 난것이죠.
그러나 그녀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처벌을도 받지 못합니다.
다만 옥탑에 갖혀서 평생 내려오지 못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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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여왕]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스페인의 '여장부'_이사벨 1세(Isabel Ⅰ)

    Tracked from 진리의 길 2009/02/27 17:38 del.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 아들 부럽지 않은" 그런 여인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필자는 서슴지 않고, 스페인 제국의 부흥기를 시발점이 되었던 '여장부', 이사벨 1세(Isabel Ⅰ)를 꼽을 것이다. ▶ 배경 1451년 4월 22일 카스티야의 왕궁에서 태어난 한 작은 여자아이를 두고 파란만장한 삶을 예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웃나라인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이사벨 왕후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딸에게 '이사벨'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

  1. 노혜지 2011/08/31 21:47

    이사벨여왕 좋은여왕인줄 알았는데, 다시봤네? ㅋㅋㅋ 아주 악녀가 따로 없고만. 지옥에나 떨어져라.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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